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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직접 설거지 한지 2주째, 아내는 외출 중

by 광제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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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만 가는 아내의 아주 특별한 휴가


맛있게 밥을 먹은 후 그릇들을 싱크대에 아주 조심스럽게(?) 집어넣고는 조용히 소파에 몸을 기댑니다. 나의시선이 아직 밥그릇에 집중되고 있고 고개를 숙인 상태이긴 하지만 눈치는 9단,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오늘도 설거지는 내담당인가봅니다.

이 여편네는 밥 먹을 땐 누구 못지않게 잘 먹다가도 설거지 시간만 다가오면 아주 죽는시늉을 한답니다. 자연스레 설거지의 임무가 나에게 넘어 온지도 벌써 2주째입니다. 이러다 아주 영원히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전신마취를 하고 복부를 절개하는 큰 수술을 지난 2일에 했으니 정확하게는 12일이 지났습니다. 애들이 방학을 했지만 당연히 뒷바라지는 내담당. 그때부터 시작된 집안 살림입니다.

수술을 아주 잘 마친 후, 방귀가 나오지 않으면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3일째가 되던 날부터 음식물을 조금씩 섭취하더니 병원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건재(?)를 과시했던 아내입니다.

전국의 최고 기온이 섭씨 36도까지 치솟으며 올 여름 들어 가장 뜨거운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며 많은 사람들이 가마솥에서 허우적댈 때, 아내는 섭씨 26도 안팎의 병원에서 피서 아닌 피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신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으리으리한 건물인 제주대학교 병원. 깔끔한 병실에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마다 호텔에 휴양을 하는 것 같다는 인사치레를 들었던 것도 수차례. 급기야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 팀까지 병실 문밖까지 접근하여 녹화를 하며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으니 가히 환상적인(?) 병원에서의 1주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생각해도 수술부위가 아물려면 2주는 지나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 외로 튼튼한 체력(?)을 과시하는 아내가 여간 대견한 게 아니었습니다. 눈물겹도록 고맙기까지 했었지요. 무더위와 싸우며 불가피하게 집안 살림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퇴원날짜가 다가올수록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일요일은 퇴원수속이 안 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되더군요)에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는 병원에서 봐왔던 나의 아내,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사이에 병이 악화된 건가???

"아고~ 나죽네..." 하면서 툭하면 소파에 드러눕고, 앞베란다, 뒷베란다로 불려 다니면서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라..꺼내라...널어라..반찬 만들 기운이 없으니 냉우동이나 시켜먹자..등등 결국 싱크대에 쌓아놓은 빈 그릇도 며칠째 제가 치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신기한 것은 아내의 몸이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네요..이일을 우짜지요? 이러다 설거지 중독되면 곤란한데....ㅎ

이렇게 예전보다는 조금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애교로 봐줘야 할 것 같습니다. 3시간에 걸친 수술과 그에 따른 고통을 참고 견디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가족들 곁으로 와줬으니 그 무엇 보다고 고맙기만 하니 말입니다. 지금 나의 아내는 아주 특별한 외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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