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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어느 경비아저씨의 쓸쓸했던 추석날 아침

by 광제 201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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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에서 홀로 명절을 쇠는 아저씨를 보니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먼저 일어난 아내가 일찌감치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입니다. 서둘러 애들을 깨우고 청소도 하고, 차례를 지낼 접시들을 꺼내어 닦는 것은 애들에게 시켰습니다. 형제들도 일찍 집을 나섰는지 오랜만에 다 모였습니다.

전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을 하나하나 차례상으로 올리는데, 가만 보니 있어야할 음료수가 보이질 않네요. 제주로 쓸 소주와 함께 오렌지 쥬스를 늘 준비했었는데 깜빡한 모양입니다.

애들에게 심부름을 시킬까 하다가, 그냥 내가 직접 다녀오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마트로 달려갔습니다. 추석날 아침이라 비교적 단지 내가 조용합니다. 한참 차례를 지낼 시간이라 그런 것 같네요.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들고 오는 길, 경비실을 스쳐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경비실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추석날인데도 아저씨가 근무를 서는 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창문 틈으로 경비실 안을 살펴봤습니다.

정말 근무를 서고 계십니다. 경비실 벽면으로 가지런히 붙어있는 CCTV용 모니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많이 고단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마침, 안면이 있는 아저씨입니다. 쓰레기를 내다버릴 때 이것저것 분리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셔서 도와주시던, 정말 인자한 얼굴을 하신분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신건지, 가까이 다가가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셨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래시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 주십니다.

"아니, 아저씨 추석인데 근무를 하시는 거에요? 차례라도 지내고 나오시지 그러셨어요."

아차! 말을 꺼내놓고 보니 괜히 여쭤봤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늘 같은 날에는 잠깐 자리를 비워도 무방할 듯싶어 여쭤 본건데, 아저씨에겐 명절날 근무를 서야만 하는 남모를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이지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셨는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우리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 대신해서 나왔어요."

"아~그러셨군요..그럼 수고하세요. 아저씨!"

다시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여간 마음이 무거운 게 아닙니다. 비록 차례를 지내지 않아 근무를 서고 있다고는 했지만 아저씨의 표정에서 아주 무거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 평이나 됨직한 조그마한 공간에서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하며 추석날 아침을 보내시는 아저씨, 정상적이라면 차례를 지내는 일가친척집에라도 가셔서 손주들의 재롱이라도 보시며 앉아 있어야 할 분인데, 그러지 못하는 딱한 사정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명절 차례가 다 끝나고 나서 아내에서 이유를 말하고 접시에다 먹을거리를 준비를 했습니다. 누굴 시키는 것 보다는 직접 다녀오는 것이 나을 듯싶어 접시를 들고 다시 경비실로 찾아갔습니다. 웬 걸 이리 가져 왔느냐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싫지는 않으신가 봅니다.

오후 들어 접시를 찾으러 가보니, 아저씨는 교대를 하셨는지 보이지 않고 다른 분이 근무를 서고 계시네요. 깨끗이 씻어진 접시, 아저씨는 드시라고 가져온 차례음식을 하나도 드시지 않고 포장을 하여 가져가셨다고 합니다. 혼자 사시는 분이랍니다.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를 보면서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아저씨의 쓸쓸한 추석을 보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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