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객들
손이 끊어져 나가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의 혹독한 한파를 경험하고 하산하는 사람들의 입에선 안나푸르나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정말 혹한의 한라산을 경험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한라산은 역시 천의 얼굴을 지닌 것이 맞는가 봅니다.
바로 어제, 시시각각 변하는 한라산 특유의 기후를 이번에도 여실히 경험하고 내려왔습니다. 얼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를 견뎌낸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려는 듯, 환상적인 그림을 막판에 선사하네요.
어제 아침 7시경 한라산 성판악을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이렇게 급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기온은 여전히 매서웠지만 간간히 열려주는 하늘이 잘만하면 기막힌 설경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해발 1,500고지의 진달래밭 대피소를 지나면서 날씨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버립니다. 매서운 눈보라 강한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방한장비를 서둘러 보강을 했지만 눈으로 파고드는 눈보라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두꺼운 장갑을 끼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시려웠고, 가끔 촬영을 위해 장갑을 벗을 때면 손가락이 끊어져 도망갈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계속하여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카메라를 간수하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습니다. 경험해보신분들 아시겠지만 DSLR 카메라엔 유난히 눈보라가 잘 붙습니다. 자칫 소홀했다가는 카메라를 망가뜨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백록담에 기어코 올랐습니다. 한라산 동능 정상의 칼바람은 맞아본 사람은 익히 아실 겁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할 정도입니다. 의지할 데도 없는 곳에서 겨우 몇 컷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는 서둘러 관음사 코스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더욱 험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60센치의 눈이 내렸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엉덩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내려오는 동안, 불과 30분이면 내려올 용진각 계곡까지 무려 1시간40분이나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기진맥진 기운이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죽다 살아난 느낌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수고한 자에겐 역시 그냥 지나치는 식이 없더군요. 용진각 계곡에 다다랐을 때 반나절 이상을 시커멓게 뒤 덥혔던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눈부신 설경이 마지막에 와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이었습니다. 어제 경험한 한라산의 천의 얼굴을 소개해드립니다.
중간쯤 한라산 정상의 칼바람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평일인데도 등반객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네요. 속밭대피소에 모여든 등반객들
성판악 코스를 통해 정상으로 오를 때만해도 날씨는 괜찮았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의 조용한 날씨
발디딜 틈 없는 진달래밭 대피소
하지만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후의 날씨는 전혀 딴세상입니다. 갑자기 눈보라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장비를 챙기는 등반객들
해발 1,800고지 인근, 매서운 눈보라에 등반객들이 당황해 합니다.
설경사진을 찍어도 혼통 잿빛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오릅니다.
등반객들의 몸이 강한 바람에 날라갑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정상입니다. 칼바람이 불어옵니다. 잠시 머뭇거릴 틈도 없습니다. 몇 컷의 사진만 남기고는 서둘러 움직입니다.
관음사 코스를 향해 내려섭니다.
폭설과의 사투는 계속 됩니다. 엉덩이까지 푹푹 빠집니다.
드디어 용진각 계곡.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급변합니다.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주변으로 환상적인 그림이 만들어 집니다.
용진각 구름다리와 왕관봉
그냥 찍어대도 작품입니다.
'명품 한라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세번 만에 만난 신비로운 한라산 설경 (60) | 2011.01.28 |
---|---|
영하의 강추위가 만들어낸 걸작 (82) | 2011.01.06 |
쓰러질뻔한 한라산의 환상적인 눈꽃 (77) | 2010.12.20 |
첫눈 내린 뒤에 본 한라산의 화려한 단풍 (73) | 2010.11.14 |
하늘아래 정원 한라산 사라오름, 직접 가보니 (108) | 201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