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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한인의 안타까운 죽음과 지하철 의인 이수현

by 광제 201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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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사회, 아니 한국과 미국에서는 지하철 선로에 고의로 떠밀려
달리는 전동차에 치어 숨진 한국인 교포에 대한 사망사고로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뒤 충분한 구조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사건이 벌어진 후, 미국 내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각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메말라가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 돕지 않은데 대하여
미국의 방송과 신문들이 이 사건을 주요하게 다루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아주 짧은 시간인 22초,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보면서 사진을 찍을 줄은 알았어도 누구 한사람 구출을 하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근처에 있던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우마 압바시는 구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사진만 찍고 있었다며 많은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도 보듯이 그는 피해자와는 상당한 거리에 있어 이미 늦었다고 판단을 하여
기관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려고 수차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문제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없었고 심지어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경악할 일은 사고 후, 피해자가 승강장 위로 끌어 올려 진 이후에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휴대폰에 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빠르게 달려오는 전동차를 보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는 상황에서
누가 과연 달려들 것인가 라는 이야기도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보면서 과거 일본에서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열심히 유학생활을 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고 이수현씨,
2001년 1월 26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지하철 선로에 쓰러진 취객을 보는 순간,
선로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의 운명이 갈라지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뿐,
고 이수현씨와 근처에 있던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 씨는 취객을 구하려고 선로 밑으로 뛰어 내려갔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취객과 두 사람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당시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민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고가 났던 그해 사고현장에는 두 사람을 기리는 2개 국어의 추모 플레이트가 설치되기도 하였습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다른 두 사건은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일까요.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키티 제노비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키티 제노비스'는 1964년 뉴욕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살해당했는데,
당시 현장을 본 사람이 38명이나 됐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지라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요즘 사회의 세태와 뿌리 깊게 박힌 이기주의가 꼬집은 것입니다.

이러한 세태는 남의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보면서도 괜한 일에 말려든다고 우려한 나머지
장시간 방치하여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것도 가장 큰 예입니다.
오히려 선행을 베풀려는 사람들의 오지랖으로 치부되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왜 남의 일에 신경을 쓰냔 얘기지요.

2년 전에 도로에서 비슷한 일을 실제로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차량들이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 상황, 신호가 바뀌자 대부분의 차량들은 진행을 하는데,
유독 한 대의 차량만 꼼짝 않고 서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 차량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차량들이 크락숀을 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차량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운전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스쳐지나가며 그 차량의 운전자가 핸들에 얼굴을 박고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알고 보니, 피로에 지친 나머지 신호대기 중에 잠깐 졸았던 것이었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만에 하나 이 운전자가 목숨에 시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어찌됐을까,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하기만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두고 미국에서는 '왜 그 자리엔 영웅이 없었을까?' 개탄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피해자의 손을 잡아끌어 아주 쉽게 목숨을 구했다면 이렇게 크게 다뤄졌을까요?
아마 단신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영웅이 있고 없고를 탓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그 자리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고 이수현씨 같은 사람 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천은 또 하나의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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