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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런 제주

우도에서 보는 귀한 벌초 풍경

by 광제 200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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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우도에서 보는 귀한 벌초 풍경
-각별한 고향사랑을 보여주는 우도의 벌초철-

대한민국최고의 관광지로 떠오른 우도가 시원한 가을분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여름 내내 발길들이 쉼 없이 스쳐지나간 뒤라 한시름 쉬어 갈만도 한데, 성산포를 오가는 도항선은 여전히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입니다. 계절은 이미 확연하게 초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주듯 파도가 유난히 넘실대고 가슴을 파고드는 세찬 바닷바람에는 슬그머니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돌담, 이국적인 바다빛깔, 새하얀 백사장, 바람과 해녀 그리고 등대. 우도라는 이름을 떠 올릴 때면 어김없이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 있습니다. 우도를 향하는 도항선에 몸을 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이제 어느덧 초가을, 뭍사람들의 상상하는 우도의 모습은 눈이 부실정도로 파랗고 높은 하늘과 우도의 초원 위를 달리는 살찐 조랑말을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우도봉이 바라다 보이는 관문 천진항,
벌초를 하기위해 우도를 찾는 귀향객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도에서는 다른마을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도에 또 다른 진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 진풍경은 찰나에 이뤄지기 때문에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바로 벌초객들의 모습입니다.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속에 담아 가면서 제주에서도 유독 많은 산소들이 봉긋봉긋 솟아 있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본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주도에는 유별난 벌초풍습이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성묘의 개념으로 벌초를 하지만, 제주에서는 성묘풍습이 오히려 낯섭니다. 조상님의 산소에 일년 동안 무성하게 자라난 풀을 깨끗하게 베어내고 단장을 하여 후손들이 차려 놓은 차례상을 기분 좋게 맞으시라는 정성으로 추석 차례를 지내기 한 달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벌초의 피크는 음력 팔월초하루에 집중됩니다. 초하루가 평일이면 그날과 가까운 주말이 가장 많은 벌초객이 조상님의 산소를 찾는다고 보면 됩니다.


올해 제주의 벌초피크는 바로 지난 주말, 유난히 봉분들이 많은 우도를 다녀왔습니다. 우도에는 글쓴이의 조상님 산소가 무려 7자리나 있습니다. 후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오로지 벌초만을 위하여 일년에 한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가는 우도입니다. 시원스런 우도봉의 맞은편 조그만 산등성이 반대편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도의 주민들의 조상님들을 모셔놓은 산소들이 즐비합니다. 제주 본 섬에서 이곳으로 봉분을 쓰러 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우도원주민들인 것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본 섬이나 도회지로 나가 살기 때문에 이때쯤만 되면 우도의 민가들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조상님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대거 우도로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벌초를 하기위해 고향을 찾은 일가친척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합니다. 제주도의 벌초가 주말에 집중되는 이유 또한 학생들을 비롯한 어린 후손들에게도 조상님의 산소를 알게 하고 손수 벌초를 함으로서 후손의 도리와 일가친척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옛날에는 길다란 낫으로 벌초를 했지만 요즘에는 대부분이 예초기를 사용합니다.
예초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참 말들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조상님이 누워있는 산소에서 어떻데 시끄러운 기계음을 낼 수가 있느냐며
 예초기사용에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할 것없이 예초기를 사용합니다.

    
제주도의 벌초는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는 문종벌초가 잘 자리잡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추석날 차례를 지낼때보다 더 많은 친척들이 모이는 것을 볼수 있는데,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조상님의 산소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 중의 하나라고 강하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우도에서의 벌초가 즐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도에서만 볼 수있는 빼어난 풍경입니다.
이마에 흐른 땀방울을 닦아내며 고개를 쳐들면
푸른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의 시원한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기때문입니다.

우도공동묘지에서 바라 본 우도 초원과 성산일출봉의 모습
 
우도공동묘지에서 바라 본 우도봉의 모습

벌초객 뒤로는 제주 본섬, 종달리의 지미봉이 기세도 등등하게 서 있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유람선 한척이 우도의 바다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초원과 파란 하늘이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조상님의 산소에 벌초를 마친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올려놓고 절을 올리고 있는모습입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도의 벌초풍경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아마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우도의 산담(산소에 둘러진 돌담)은 제주에서 흔하게 봐 온 산담과도 분명히 틀린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돌로 산담을 쌓아놓고 시멘트를 발라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그것인데요, 이유인즉, 우도에는 예로부터 소나 말을 초원위에 자유롭게 풀어서 길렀습니다. 물론 제주 본섬에서도 자유롭게 풀어 키운 것은 비슷하나, 달아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인 조그마한 섬 안이라는 점, 그리고 비교적 한정된 공간에서 묘지와 목장을 같이 사용하다 보니 우마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산소들은 소들에게는 상당히 취약했었는데요, 비교적 곱고 뜯기 좋은 풀이 산소 안에는 많이 자라기 때문에 웬만한 높이의 산담은 그대로 뛰어 넘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소 때들이 한번 훓고 지나가면 산담들은 모두 무너져 내려 뒤처리를 하는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왕이면 견고하게 시멘트로 산담을 쌓아 산소를 보존하려는 것입니다.


벌초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바로 제주사람들에게 있어서 벌초는 아주 특별한 세시풍속 중에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제주지방에 살고 있는 후손들은 물론이요, 육지부, 심지어는 외국에 살고 있는 후손들까지도 일부러 벌초 하나만을 위하여 찾아 올 정도로 중요한 전승문화인 것입니다.


옛날 글쓴이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묘지 한자리를 벌초하기 위하여 낫 한 자루만 들고서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집을 나서, 땅거미가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 돌아왔던 때도 있었습니다. 벌초만큼은 만사를 제쳐놓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제사,명절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좋으나 벌초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집안 어르신들의 가르침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벌초의 중요성은 일선 학교에서도 동참을 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벌초방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8월초하루를 전후해서 1~2일간 제주 전체가 벌초에 집중하기도 하였습니다. 육지 사람들에게는 제주의 이러한 벌초문화가 유별나게 보일지 모르지만, 조상님의 산소를 직접 어루만지며 손질을 하는 실천적인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줌으로서 효(孝)의 근본을 가르치려는 웃어른들의 각별함이 깃들어 있음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한라산과 제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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