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한 켤레면 충분했던 아버지의 사연
쳇바퀴 돌 듯 하루 일을 마치고 꼬질한 땀 냄새를 풍기는 속옷을 세탁 바구니에 던져 놓으면 아내는 깨끗하게 세탁하여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는 속옷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어둡니다. 열 켤레가 넘는 양말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속옷들, 충분한 수량으로 갈아입는데도 가끔은 빨아놓은 속옷이나 양말이 없어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미처 세탁하지 못한 경우인데 이럴 때는 하찮은 일이지만 아내와 작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오늘은 문득 속옷바구니에 가지런히 놓인 양말을 보니 수십 년 전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5년이 흘렀습니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는 걸 참으로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재주꾼이셨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고장 난 물건이 있으면 담배 한 갑 사들고는 죄다 우리집으로 갖고 오곤 하였는데, 뚝딱뚝딱 만지기만 하면 감쪽같이 수리가 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재주 좋은 아버지가 계셔서 좋은 점이라곤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린 마음이라 그랬겠지만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니던 초등학교시절, 비록 고무신이긴 하나 새 신발 한번 신어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이유는 바로 손재주 좋은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고무신이 가장 먼저 닳는 부분은 뒷 굽인데, 빵꾸가 나자마자 아버지가 고무를 덧대어 감쪽같이 수선을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고무신만이 아니었고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양말까지 손수 꿰매주시곤 하셨습니다. 오죽했으면 바느질 솜씨도 어머니보다 더 좋았으니 할 말 다한 겁니다. 꿰맨 양말에 빵꾸 때운 검정고무신, 이게 초등학교 시절 저의 모습이었는데, 가난했던 당시의 집안 사정에는 아랑곳 않고 당시에는 늘 불만이었습니다. 아껴야 잘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이후에도 어디까지나 그건 희망사항으로 그쳤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는 양말을 꿰매주시며 절약을 강조하시던 아버지에게는 정작 양말이 한 켤레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켤레의 양말을 두고 갈아 신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시에 아버지에게는 언제는 양말은 달랑 한 켤레였습니다. 어떻게 한 켤레의 양말로 생활이 가능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양말이 두 켤레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만의 방식이 있었는데, 잠들기 전, 손발을 씻으면서 하루 종일 신었던 양말을 손수 빨아서 널어두는 것입니다. 물기를 꽉 짜서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널어두면 밤새 말라 다음날 아침에 신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그다지 달가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나서야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당을 청소하게 끔 하였던 아버지는 평소에도 게으름 피우는 것을 가장 싫어하였습니다. 한 켤레의 양말만 있어도 충분하다며 몸소 그 방법에 대해서도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아버지, 깊게 패인 주름보다 더 깊었던 그 뜻이 이제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고서야 더욱 진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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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이 오네요.ㅜㅜ
2010.01.29 07:42잘보고 갑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뜻을 헤아릴 때가 되신 파르르님 ..
2010.01.29 07:46발톱 깔끔하게 깍으셔서.. 양말 구멍내지 마시구요! 양말은 반드시 뒤집어벗거나, 동그랗게 뭉치지마시고 어두운색 밝은색 분류하셔서.. 탁탁 털어 빨래통에 담으세용..^^
ㅋㅋㅋ
제가 집에서 노래처럼 부르는 멘트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셔용
오늘의 화두는 아버지네요.
2010.01.29 07:48우리 집도 저보다 차분한 남편이 바느질을 더 곱게 합니다.^^
정말 멋진 아버지셨네요.
2010.01.29 07:53 신고파르르님도 어떤 분인지 조금은 짐작이....
행복한 하루되세요. ^^
모과님도 오늘 아버지에 대한 글이었는데요...
2010.01.29 08:00오늘 아버지 생각하게 하는 날이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우리아버지두 늘 읽찍 읽어나시어 부지런하셨는데..
2010.01.29 08:09 신고난 지금 넘 게으른 것 같습니다..
파르르님 좋은 하루가 되세요~~^^
우리네 아버지들은 저렇게 아끼면서
2010.01.29 08:09자식들을 키우셨죠..
그런 삶을 살았던 우리 부모님이기에 더 짠 합니다.
2010.01.29 08:13 신고잘 보고 가요.
아버지가 되고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2010.01.29 08:25아둔하지요.
가슴 뭉클하네요..
2010.01.29 08:39 신고우리세대 아버지 모습이네요..
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들도 같지 않았나 싶어요..
파르르님 글보니 많이 느끼게됩니다.
2010.01.29 09:54 신고한주 마무리 잘 하시길...
우리의 아버지 모습입니다.
2010.01.29 10:06 신고짠해집니다.
세상이 편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2010.01.29 10:10 신고6,70년대 우리 아버님들 세대의 근면함을 본받아야겠어요..
잘 읽고 갑니다. ^^
정말 존경스러운 아버님 이야기 입니다.
2010.01.29 10:14 신고예전보다 많이 편해지고 많이 풍족하게 살고 있었지만,
잊고 살아가는 한가지를 오늘 깨우치고 갑니다.
이제 주말이 다가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부모님 세대들의 그런 근면성실하고 절약하는 은덕을 입어
2010.01.29 11:05이렇게나마 우리들이 잘 사는 건 아닐까 합니다.
정말 우리네 부지런한 아버님이시네요..............
2010.01.29 11:30우리부모님이 생각나게 하는글이였어요.. 잘보고갑니다.
양말 한켤레로 견디면서
2010.01.29 12:57 신고자녀들에게 몸소 절약의 미덕을 보여주셨네요..
그렇게 모은 돈은 다 자녀들을 위해서 쓰셨겠지요..
참 가슴찡한 이야기입니다.
2010.01.29 13:47 신고아버지가 그립군요.
파르르님의 애틋한 아버지의 이야기에
2010.01.29 14:21멀리 나가계신 아빠가 갑자기 보고싶습니다..
이따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아양좀 떨고 싶은데
눈물이 먼저 나올까바 불안합니다..
어릴 적, 양말이 맘에 안들면 아버지의 양말을 몰래 신고 학교에 가곤 했었지요.
2010.01.29 14:29한제 언제부턴가 아버지께서 당신의 좋은 양말들을 학교 갈때마다 내어주서더라구요.
어머니는 저를 나무라셨지만......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