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맛없게 담근다는 식당 아줌마의 항변
내가 이집을 찾은 이유는 깍두기의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랍니다.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단골음식점이 있습니다. 뭐 저의 얼굴을 기억하질 못하는 것을 보면 단골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에는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번 꼴은 갔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설렁탕을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으로 요즘처럼 사나운 날씨엔 뜨끈한 설렁탕이 그만이지요. 사람들도 아주 많이 찾는 집입니다.
며칠 전의 오후 시간, 전에 올 때는 항상 끼니때를 맞춰 왔지만 시간을 넘기고 나니 비교적 한가합니다. 아내와 함께 자리에 앉고는 늘 시키던 대로 설렁탕을 주문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설렁탕 전문점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다른 별다른 밑반찬이 나오질 않습니다. 집어먹을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깍두기뿐입니다. 여기에 매운 청량(양)고추 몇 개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실제로 설렁탕을 먹으면서 화려한 밑반찬은 불필요 하지요.
그래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설렁탕 맛보다는 깍두기 먹는 맛으로 찾는다는 사람들도 생겨났을 정도로 맛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먹어본 깍두기의 맛은 우리가 그동안 먹어왔던 그 깍두기의 맛이 아닙니다. 처음 입에 넣을 때부터 아내도 똑같이 느꼈으니 나의 입맛이 틀려진 것은 더욱더 아니었지요. 그냥 심심한 무에 고춧가루만 탄 것 같은 한마디로 밍밍한 맛이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잠시 후, 설렁탕을 내어오는 아주머니, 별로 바쁜 것 같지는 않아 슬쩍 말을 건네 봅니다.
"아주머니... 깍두기 맛이 좀 이상한데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왜요? 이상할 리가 없는데...;;맛이 어떤데요?"
"우리가 여기 자주 왔었는데요..전에는 이 맛이 아니었거든요..너무 밍밍한데요.."
자주 온다는 말에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어갑니다.
"그게요..깍두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요...맛있다고 손님들이 깍두기만 너무 축냅니다...그래서 할 수 없이 조금 맛없게 담그는 겁니다...그런데 그렇게 맛이 없나요?"
정말 황당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님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고 일부러 맛없게 담근다니요. 다른 밑반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랑 깍두기 하나를 내어오면서, 더군다나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설렁탕 보다는 깍두기 맛' 때문에 손님들이 찾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황당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깍두기를 덜 먹긴 하던가요?"
"당연하죠..얼마 전 야채 값 엄청 올랐을 때부터 이렇게 했는데 확실한 효과를 보았지요."
"아니 그럼, 이제 무값도 많이 내리지 않았나요? 그럼 예전처럼 맛있게 해줘야죠..깍두기가 맛이 없으니, 설렁탕 맛도 나지 않는데요?"
거듭된 물음에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아주머니의 얼굴이 점점 상기되는 듯하여 더 이상 말을 아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다른 음식점에서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손님들을 끌어볼까 고민 중인데, 이 음식점은 정 반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까지 하면서 장사를 해야 하는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단골집을 찾아 새콤한 깍두기 맛을 보려다가 오히려 급 좌절만 맛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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