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가까이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할아버지입니다. 어떻게든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하는데, 도망치듯 서울로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싫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여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곁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아빠! 할아버지께는 학교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세요."
서울로 떠나면서 아빠에게 남겨둔 한마디였습니다. 얼굴도 뵙질 않고 떠나 버린 걸 곧 알게 될 것이고 많이 섭섭해 하시겠지만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글의 제목에서는 할아버지를 싫어한다고 적었지만 실상은 할아버지에게 폐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릴 때부터 당신의 무릎위에 올려놓고 키워온 손주 녀석,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언제까지나 귀염둥이 손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이 정말 극진했지요. 주말이면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 잠을 잘 때에도 할아버지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다며 품속을 떠나지 않았던 손주.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손주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할아버지가 주말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손주에게 물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단하나, 용돈을 두둑하게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된 물질적 사랑은 할아버지 자신에게는 생애 가장 큰 낙이요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마냥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그 손주도 이제는 많이 컷습니다. 늘 정신적인 지주처럼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할아버지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의 자그마한 고충조차도 스스로 눈치를 챌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가진 것 없이 어렵게 살고 계시지만 갈 때마다 손주에게 쥐어주시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오신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주의 얼굴을 보는 낙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스스로 감수하고 살아왔지만 이를 보는 손주의 마음 한켠은 언제나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적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 많이 자란 것이지요. 대학을 입학하면서 받은 수백만 원에 달하는 금전적인 사랑은 그래서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손주는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끝내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면서는 그동안 마음속에 부담으로 안고 있었던 부분을 스스로 털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난일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할아버지께서는 상당한 금액을 용돈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살다보면 가족 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사랑도 있고 정신적인 사랑도 있겠지만, 할아버지께선 물질적인 사랑에 너무나 많은 비중을 두고 손주를 사랑하셨나봅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금전을 초월한 마음이 담겨져 있겠지요.
이제는 부쩍 커버린 손주, 정신적으로도 할아버지의 애환이나 고충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아이로 성장을 해버린 것입니다. 얼굴도 안보고 훌쩍 떠나버린 손주를 보며 섭섭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그저 어깨만 다독 거려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릴 나이가 된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며칠 전, 아주 가까운 지인의 자녀가 방학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면서, 할아버지를 못 뵙고 가는 이유가 너무나 가상하고 기특하여 이렇게 끄적여 봅니다. 요즘 애들 가끔은 이렇게 어른들을 놀래 킬 때가 있습니다. 너무 착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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