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상술에 두 눈 뜨고 거지될 뻔한 사연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각박한 서울 상경기

4일간의 서울구경의 마지막 날 찾아간 곳은 서울타워가 있는 남산이었답니다. 아들과 딸,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조카까지 대동한 여행이라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남산 구경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답니다.

자고로 커가는 애들이란, 세상 넓은 줄은 알아야 하는 겁니다. 뭐, 우리 때에는 부모잘못(?)만나 서울구경 제대로 못해봤지만, 애들까지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여유와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넓은 세상인 외국에도 한번 데리고 나가면 좋은데... 아직은 그럴 형편이 못되지만 언젠가는 지구 반대편도 구경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에 렌터카 끌고 가족이랑 여행을 다녀보니 세상 참 편해졌더군요. 네비게이션에 행선지만 콕 찍어주면 지가 알아서 이리가라, 저리가라, 자세히 알려주니까 말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지리에 빠삭한 사람이 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구경조차도 못했던 도시가 바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아닙니까. 뭐 서울에서 오래 산 사람조차도 도시한복판에 떨궈 놓으면 동서남북을 모른다니 할 말 다한 겁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그리해서 찾아간 남산, 하필이면 일요일이었는데, 서울사람들은 휴일이면 죄다 남산으로 모인 답니까?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요. 사람에 치어 귀한 애들을 잃어 버릴까봐 노심초사,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애들을 챙기느라 구경할 것도 제대로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촌티 한번 제대로 난 것이지요.

어른들이 노심초사 하는 것과는 다르게 애들은 달라진 환경에 금방 적응을 하더군요. 서울바닥 무서운 줄 모르고 얼마나 지 멋대로 뛰어 놀던지...그러던 중, 애들의 눈에 돈을 받고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곳을 발견한 것입니다. 밖에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유명연예인들의 캐리커쳐가 보란 듯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고 천막 안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답니다.

애들이 그냥 넘어갈리 없었지요. 세 녀석 모두가 한목소리로 캐리커쳐를 갖고 싶다는데 어쩝니까. 다시 오기도 힘든 곳인데, 가능하면 해줘야지요. 가만히 보니 비용도 그리 비싸보이지는 않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천막에 내걸린 금액을 보니 5분 크로키라 적혀 있고, 인물화 한사람을 그리는데 5천원입니다. 영어로는 instant sketch라고 적어 놓았더군요. 아마도 간단하게 후다닥 그려내는 캐리커쳐인가 봅니다. 세 명이 합해봐야 만5천원, 까짓, 이것하나 못해줄까 싶어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아저씨, 어린이 셋 캐리커쳐 그리려고 하는데요. 얼마나 기다려요?"

"만 원짜리로 할 거죠?"

오잉 이건 또 뭔소리래요? 5천원인줄 알고 별 부담 없이 애들에게 그려 주겠노라 했는데, 만원이라니, 조금 황당하기도 하여 자세히 알고 보니, 간단하게 그리는 캐리커쳐는 5천원이지만.....
5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인물화는 만원이라는 겁니다. 이런...ㅜ

그렇다면 밖에서도 보이게끔 만 원짜리도 따로 적어 놓던가...ㅜ
살펴보니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띠는 곳에는 7~8분 sketch가 만원, 그리고 detail sketch라고 적힌 정밀묘사는 15분 이상이 걸린다 하여 2만원을 받는다고 적혀 있었으니....
뭐 노골적으로 속인 것은 아닌 것 같고, 비록 낚시에 속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 정도에서 넘어가기로 하였답니다. 

셋이서 차례대로 줄을 서서 인물화를 그리는 동안, 다른 화가들이 그리는 모습도 정말 볼만하더군요, 다섯 분의 화가들이 숙련된 손놀림으로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하나만을 갖고 그럴싸한 인물화 하나를 완성시켜가는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약 20여분이 지나, 세 녀석의 인물화가 완성이 되고 지갑을 꺼내 돈을 지불하려는 순간,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액자는 안 하려구요?"

"액자라니요?"

"연필로 그렸기 때문에 액자를 하고 가야 그림이 뭉개지질 않습니다."

"얼만데요?"

"한 개당 2만 5천원요."

헐..이런 무슨 강아지가 풀 뜯어 먹는 소리랍니까.
애시당초 그림은 얼마이고, 그림이 뭉개지지 않게 들고 가려면 액자까지 해서 얼마라고 말을 했으면 그렇게 알고 하던지 말던지 했을 것인데, 다 그려놓고 이제 와서 액자를 해야 그림이 온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니 말입니다.

그럼 대체 셋이 합하면 얼마입니까.
그림 세 장에 3만원, 액자 세 개 합해 7만5천원,
컹...순식간에 10만 5천원으로 껑충 뛰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세 명이다 보니 비용이 눈에 띠게 불어 버린 것도 있지만, 만5천원을 예상했었던 결과 치고는 너무 황당하여 액자를 구입하지 않고 그림을 갖고 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냥 돌돌 말아서 가면 안될까요?"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림이 뭉개질텐데....그럼 말아 줄테니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서 들고 가요..망가지면 책임 안집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한 장씩 따로따로 말아서는 고무밴드를 채우고는 건네주더군요.
그런데 우리가 어디 택시타고 근교나들이 온 것도 아니고, 남은 서울구경 더 다녀야 하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가야 하는 처지기에 도저히 그냥 들고 갈 자신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저씨께 제주도까지 가야하는 사정을 얘기하고 커다란 비닐봉지라도 하나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대뜸.

"비닐봉지 없어요."

<<없기는...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
"저기 보이는데요, 저거 하나만 주시지요."

"저건 액자 구입한 사람들만 주는 겁니다."

아니, 무슨 인심이 이리 야박하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3만원을 주고 그림을 그렸고, 제주도까지 가야하는 딱한 사정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몰차게 뿌리치는 사나운 인심, 정말 무섭더군요. 아니,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하더니, 하마터면 정말 코 베일 뻔 하고, 눈물 나도록 각박한 인심, 몸소 체험한 서울의 남산구경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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