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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이스크림 하나에 눈물 쏟아낸 의경 이야기

by 광제 201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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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하나에 눈물 쏟아낸 의경 이야기

-15년 전 아이스크림이 맺어준 의경과의 인연-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그렇잖아도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신호를 위반하여 경찰의 정지 명령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니 설상가상입니다.

이상기온으로 무더위가 찾아왔던 며칠 전 시내의 한 교차로에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황색등, 차량은 이미 교차로 안으로 접어들었고 눈앞에는 축구공만한 적색등이 우악스럽게 버티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눈치를 보면서 재빨리 교차로를 벗어나면서 제발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랬지만 역시 죄에는 벌이 따르는 가 봅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한대가 철썩 따라 붙더니 차량을 세우라고 합니다. 외마디 탄식을 내뱉어 보지만 늦었습니다. 일진 사납습니다.

길가에 차량을 세워놓고 보니 뒤쪽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경찰관 보다, 지나치면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욱 신경이 쓰입니다. 이거 완전 얼굴 팔리게 생겼습니다. 처벌을 기다리는 죄인의 입장이다 보니 잠깐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 보이기는 또 처음입니다.

"신호를 위반하셨습니다...면허증 좀 주십시오.."

"미처 신호를 보지 못했네요..죄송합니다.."

뭐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관대한 처벌을 바래보지만 경찰관의 굳은 표정을 보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런데 면허증을 받아 든 경찰관의 행동이 조금 이상합니다.

딱지를 발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면허증과 사람의 얼굴을 수차례 번갈아 보는듯하더니..

"혹시 O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윽! 맞는데요..저를 아세요?"

"아이고! 알다마다요..제가 어찌 잊습니까...일단 차를 저쪽으로 움직이십시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 듯한데,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면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혹시 95년도에 OO 경찰서 정문의 의경..기억 안 나십니까?"

순간, 어렴풋이 뇌리를 스쳐가는 얼굴이 있습니다.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경찰서 정문에 보초를 서던 의경의 일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경찰관의 얘기로는 95년도라고 하니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경찰서 인근에 있었던 친구의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던 때였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이었습니다. 점심때면 매일같이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은 경찰서의 정문을 지나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유난히 불볕더위가 기세를 떨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해의 여름, 경찰서 정문에서 매일같이 보초를 서던 의경이 있었습니다.

양산으로 만들어진 그늘 밑에 서 있다고는 하였지만 늘 벌겋게 상기된 얼굴표정으로 보아 찌는 더위의 기세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무엇보다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부동자세로 가만히 서있으니 그 고욕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친구와 나는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식당 옆에 있는 조그마한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어 들었는데, 갑자기 정문의 의경이 생각이 납니다. 한 개를 더 사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의경에게 건넸더니 한사코 마다합니다.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시민이 사주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설득한 끝에야 어렵게 받아듭니다.

친구 사무실에서의 일은 그 후로도 약 한달 동안 계속되었고 아이스크림도 더 없이 좋은 식사 후의 디저트였습니다. 물론 구입하는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세 개였습니다. 간혹 그 의경이 없을 땐 다른 의경이 대신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경찰관이 바로 그때의 그 의경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머나먼 타향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에 낯모르는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아이스크림 한 개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당시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아이스크림 하나가 별것 아닌지 모르지만, 힘들었던 군 생활에서 너무나도 힘이 되는 감동을 주었고, 친형보다도 더 애틋했던 정을 잊을 수 없어 제대를 하고서도 다시 이곳을 찾아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단지 이름 하나뿐, 좁은 지역이라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하고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낡은 필름을 되돌리듯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경찰관.

이것을 보니, '넓고도 좁은 것이 세상이며, 인연이란 것이 때론 정말 소중하다.' 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범칙금 딱지 안 끊느냐?" 고 하니까, 그 돈으로 조카들 아이스크림 사주라고 하네요. 대신 다음에 걸리면 가차 없이 딱지 발부 한답니다. 설마 이런 사연으로 인해 경찰관이 직무유기라고 문제 삼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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