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하나에 눈물 쏟아낸 의경 이야기

-15년 전 아이스크림이 맺어준 의경과의 인연-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그렇잖아도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신호를 위반하여 경찰의 정지 명령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니 설상가상입니다.

이상기온으로 무더위가 찾아왔던 며칠 전 시내의 한 교차로에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황색등, 차량은 이미 교차로 안으로 접어들었고 눈앞에는 축구공만한 적색등이 우악스럽게 버티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눈치를 보면서 재빨리 교차로를 벗어나면서 제발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랬지만 역시 죄에는 벌이 따르는 가 봅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한대가 철썩 따라 붙더니 차량을 세우라고 합니다. 외마디 탄식을 내뱉어 보지만 늦었습니다. 일진 사납습니다.

길가에 차량을 세워놓고 보니 뒤쪽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경찰관 보다, 지나치면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욱 신경이 쓰입니다. 이거 완전 얼굴 팔리게 생겼습니다. 처벌을 기다리는 죄인의 입장이다 보니 잠깐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 보이기는 또 처음입니다.

"신호를 위반하셨습니다...면허증 좀 주십시오.."

"미처 신호를 보지 못했네요..죄송합니다.."

뭐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관대한 처벌을 바래보지만 경찰관의 굳은 표정을 보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런데 면허증을 받아 든 경찰관의 행동이 조금 이상합니다.

딱지를 발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면허증과 사람의 얼굴을 수차례 번갈아 보는듯하더니..

"혹시 O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윽! 맞는데요..저를 아세요?"

"아이고! 알다마다요..제가 어찌 잊습니까...일단 차를 저쪽으로 움직이십시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 듯한데,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면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혹시 95년도에 OO 경찰서 정문의 의경..기억 안 나십니까?"

순간, 어렴풋이 뇌리를 스쳐가는 얼굴이 있습니다.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경찰서 정문에 보초를 서던 의경의 일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경찰관의 얘기로는 95년도라고 하니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경찰서 인근에 있었던 친구의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던 때였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이었습니다. 점심때면 매일같이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은 경찰서의 정문을 지나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유난히 불볕더위가 기세를 떨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해의 여름, 경찰서 정문에서 매일같이 보초를 서던 의경이 있었습니다.

양산으로 만들어진 그늘 밑에 서 있다고는 하였지만 늘 벌겋게 상기된 얼굴표정으로 보아 찌는 더위의 기세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무엇보다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부동자세로 가만히 서있으니 그 고욕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친구와 나는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식당 옆에 있는 조그마한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어 들었는데, 갑자기 정문의 의경이 생각이 납니다. 한 개를 더 사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의경에게 건넸더니 한사코 마다합니다.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시민이 사주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설득한 끝에야 어렵게 받아듭니다.

친구 사무실에서의 일은 그 후로도 약 한달 동안 계속되었고 아이스크림도 더 없이 좋은 식사 후의 디저트였습니다. 물론 구입하는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세 개였습니다. 간혹 그 의경이 없을 땐 다른 의경이 대신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경찰관이 바로 그때의 그 의경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머나먼 타향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에 낯모르는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아이스크림 한 개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당시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아이스크림 하나가 별것 아닌지 모르지만, 힘들었던 군 생활에서 너무나도 힘이 되는 감동을 주었고, 친형보다도 더 애틋했던 정을 잊을 수 없어 제대를 하고서도 다시 이곳을 찾아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단지 이름 하나뿐, 좁은 지역이라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하고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낡은 필름을 되돌리듯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경찰관.

이것을 보니, '넓고도 좁은 것이 세상이며, 인연이란 것이 때론 정말 소중하다.' 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범칙금 딱지 안 끊느냐?" 고 하니까, 그 돈으로 조카들 아이스크림 사주라고 하네요. 대신 다음에 걸리면 가차 없이 딱지 발부 한답니다. 설마 이런 사연으로 인해 경찰관이 직무유기라고 문제 삼지는 않겠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빵굽는 강아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한번쯤은 봐주는데요. ㅎㅎ
    ^-^ 역시 파르르님다운 행동이세요!.왠지모르게 가슴뿌듯한 이야기였어요.

    2010.05.07 09:31
  3. Favicon of http://isblog.joins.com/jk7111 BlogIcon 둔필승총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역시,,,되로 주고 말로 받는... 맞나여?^^;;;

    2010.05.07 09:41
  4. Favicon of https://windlov2.tistory.com BlogIcon 돌이아빠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훗~ 너무 너무 훈훈한 사연입니다^^!
    다음에는 가차없이!~

    2010.05.07 09:49 신고
  5. Favicon of https://abbaregi.tistory.com BlogIcon 아바래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훈훈한 사연이네요^^
    세상 좁다는 말...새삼 실감하고 갑니다.

    2010.05.07 10:14 신고
  6. Favicon of http://killerich.com BlogIcon killerich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죠^^..
    이자까지 받으셨군요^^

    2010.05.07 10:52 신고
  7. 작은천국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베스트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군요.
    이런게 울컥하는 훈훈한 감동을 적고 계시니...
    남에게 베푼 조그만 친절... 나는 잊어버리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되는군요
    이런 조금만 친절 릴레이가 이글을 통해 계속 이어져 나가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부터라도 실천~~^^

    2010.05.07 11:17
  8. Favicon of https://gkyu.co.kr BlogIcon G-Kyu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타지에서 고생하는데 ,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의경은 알았을 것 같네요~! 게다가 선행이 이렇게 좋은 결과로 맺혀지니
    더욱 뿌듯하네요~!

    2010.05.07 11:51 신고
  9. Favicon of http://sage2546.tistory.com BlogIcon 세민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요...

    훈훈하네요..^^

    2010.05.07 11:59 신고
  10. Favicon of https://slds2.tistory.com BlogIcon ★입질의 추억★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저도 모르게 몰입이 ㅠㅠ 정말 찡한데요~ 아이스크림 하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군요~ 저도 그렇게 베풀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중을 위해 그런건 아니지만
    역시 베푼만큼 돌아오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15년전의 얼굴을 기억한 의경도 놀랍네요 ㅎㅎ

    2010.05.07 12:06 신고
  1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그런 인연이었군요..
    저도 며칠전에 신호를 못보고 그만 쌩~~~

    세우드라구요..
    마침 옆자리에 망원이 떡..버티고 있었던지라..
    취재가냐고..ㅎㅎㅎ
    1만원짜리로..통과했지 뭐에요
    정말.못봤거든요..딴생각 하면서 쌩..하고 갔는댑~~~
    왜..세우는지.몰라했더니..신호위반...
    ㅎㅎㅎㅎ

    조심해야겠습니다.
    지난 인연으로..흐믓한 하루였군요

    2010.05.07 12:13 신고
  12.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파르르님은 마음따땃해요...

    2010.05.07 12:52
  13. Favicon of https://donghun.kr BlogIcon 멀티라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훈훈란 이야기 입니다.
    사람을 자신아 베풀어놓은것 만큼 되돌려 받는다고 하던데.. 딱 맞는 말이네요.
    정말 멋지네요^^

    2010.05.07 13:57 신고
  14. Favicon of http://gomnim.co.kr BlogIcon 멍든곰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무유기 맞을껀데~~~~~ 휘휘~~
    그래도 우리나라 경찰이 인간적인 면이 없다면 삭막하겠죠~~ㅋㅋ
    15년동안이나 기억하다니 대단하네요!!

    2010.05.07 14:12
  15. Favicon of https://blue2310.tistory.com BlogIcon 드자이너김군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경이든 군인이든 그때는 정말 사소한 배려들이 마음을 짠~~ 하게 만들어 주고 있죠.
    참 오랜만에 훈훈한 소식 이군요.^^
    주말 잘 보내세요~

    2010.05.07 15:56 신고
  16. 제주 적토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람냄새나는 글이네요^^ 직무유기라기 보다는 진정한 직무수행 일지도 모르죠 ㅎㅎ

    2010.05.07 16:32
  17. Favicon of https://phoebescafe.tistory.com BlogIcon Phoebe Chung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려울때 힘이되주거나 도움을 받으면 절대 못있지요.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일 지라도요.
    의경분 역시 파르르님 못지않은 멋진 분이십니다.^^*

    2010.05.07 21:47 신고
  18.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심하게 훈훈한 이야기인데요..
    15년이나 지났는데도 기억하다니..
    역시나 베푼대로 거두는건가 봅니다.

    2010.05.07 22:58 신고
  19. Favicon of http://blog.daum.net/earlyadopter-jjang BlogIcon 도나도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의 호의가 아니라 한달여 이상을 꾸준히 베푸신 인정이었네요.
    누구나 한번쯤은 호의를 베풀 수 있지만 한달여 동안 지속적으로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이죠.
    선한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2010.05.12 10:17
  20. Favicon of http://ocshin61@hanamil.net BlogIcon 푸른솔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처럼 훈훈하고. 가슴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여기 오신 모든 님!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빕니다..

    2010.05.20 15:20
  21. 사고뭉치산적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찰서에 입초 근무를 서는 사람은 전경입니다. 딴지걸려는건 아니고...

    2010.05.20 20:01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960)
멋스런 제주 (408)
숨겨진 비경 (107)
명품 한라산 (87)
제 주 오 름 (34)
제 주 올 레 (34)
제주맛집&카페 (166)
제주도축제 (46)
캠핑&백패킹 (15)
여행 (34)
전국맛집 (25)
해외여행 (36)
생활의 지혜 (78)
세상과 만사 (567)
사는 이야기 (237)
블랙박스로 본 세상 (18)
블 로 그 (14)
초 대 장 (8)
모든리뷰 (44)




twitter
Daum 블로거뉴스 베스트 블로거기자
get rss
BLOG main image
감성 제주
제주의 숨겨진 비경, 맛집, 아름다운 이야기, 현장 등을 많은분께 알리고 있습니다.
by 광제

공지사항

  • 49,774,876
  • 3451,999
광제'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